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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스토리] 어느날 불행이 찾아왔다, 그게 내 인생을 바꿨다

작성자 : 관리자

조회 : 2,975 / 등록일 : 16-07-1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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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신동윤ㆍ구민정 기자] 사람들은 불행이란 모두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한다. 그 누구도 불행이 자기 자신, 그리고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닥치게 될 것이란 상상따윈 멀리 버려둔 채 살아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불행은 예기치 않는 순간 불현듯 찾아오는 법이다. 그리곤 삶의 궤적을 송두리채 뒤흔들어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이끌곤 한다. 이런 설명에 가장 적절한 사람이 바로 백경학(53)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다.

지난 1998년 여름, 2년간의 독일 연수를 마치고 떠난 영국 가족여행에서 당한 아내의 교통사고는 백 상임이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의 아내는 100일동안이나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극적으로 깨어났지만 왼쪽 다리 절단 수술을 세차례나 받은채 평생 장애를 지니게 됐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불행이 다가오니 그제서야 자신도 갑자기 찾아올 수 있는 불행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걸 알게됐다는 백 이사는 “장애를 안고 살게 된 아내의 모습을 보며 남은 삶을 장애인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그 어느 때 보다 강한 의지로 백 이사는 스스로 선택한 ‘또 다른 길’을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꿈의 첫 단계를 이제 막 거쳐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지난 10년간의 꿈이 현실로 구현된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이하 푸르메 재활병원)’이 개원한 지 70여일 남짓 지난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마을에 위치한 푸르메재단에서 ‘구텐백(guten Paikㆍ마음씨 좋은 백 씨)’으로 불리는 백 이사를 만났다.

 

▶기자→맥주업체 대표→공익재단 이사…“재활병원 설립 향해 수차례 ‘인생 차선’ 갈아탔죠”=장애인들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그때부터 백 이사는 장애인 재활병원을 세우겠다고 구상했다고 한다. 위독한 아내와 함께 독일ㆍ영국 등 유럽의 병원과 한국의 병원을 차례로 다닌 경험이 밑그림에 큰 도움이 됐다.

백 이사는 “독일 병원은 마치 국립공원 안의 호텔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시설이 좋았고, 재활치료와 훈련도 모두 환자 중심으로 진행됐다. 그에 비해 귀국 후 겪은 한국 병원은 급하게 치료를 받아야하는 아내를 보고도 예약 대기자가 많다는 이유로 입원을 시켜주지 않았고, 며칠을 기다려서야 겨우 가장 비싼 1인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며 “한국에도 제대로된 장애인 재활병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됐다”고 했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현실로 구체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던 백 이사는 우선 재단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10년이 넘도록 기자 생활만 한 마당에 병원을 세울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 재단 설립이었습니다.”

재단을 세우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그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사람이 바로 독일 연수 당시 맥주양조학을 전공하고 자신만의 맥주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는 후배 방호권 씨였다. 재활치료에 전념하던 부인 몰래 잘 다니고 있던 신문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온 백 이사는 방 씨와 함께 지난 2002년 국내 최초 하우스 맥주 회사인 ‘옥토버훼스트’를 차렸다.

“나를 믿어 준 59명이 투자한 자본금 28억원으로 시작한 맥주 사업이 예상보다 잘됐습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사무실 귀퉁이에는 책상을 마련해 재단 설립을 위한 구상의 끈을 놓지 않았죠.”

그로부터 3년뒤인 2005년,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백 이사는 옥토버훼스트의 지분 10%와 아내가 받은 보험금의 절반인 10억원으로 푸르메재단을 설립했다.

재단 설립 초기엔 많은 사람들에게 ‘불쌍한’ 등의 부정적 이미지로 잘못 인식된 장애인들의 삶을 바로 알리는데 주력했던 백 이사는 2007년 첫 장애인 의료 사업으로 치과를 개원했다. 장경수 당시 서울대 치대 교수의 도움을 받아 서울 신교동에 ‘푸르메 나눔치과’를 열었다.

“2006년 한 장애인 행사에서 만난 중증장애인 분이 ‘일반 치과에서는 이 치료를 안해준다. 밥이 너무 먹고싶다’는 호소에 가장 기본적인 먹는 문제부터 해결하자는 결심을 하게 됐죠.”

장애인을 위한 치과 사업을 한다는 게 알려지면서 푸르메 재단에 대한 기부도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꿈꿔왔던 장애인 재활병원도 곧 설립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보였다.

▶현실이 된 장애 어린이 재활병원 설립의 꿈, 하지만…=원래 백 이사는 성인 장애인들을 위한 재활병원을 만들려 했다. 하지만 때마침 정부가 권역별 장애인 재활병원 5개를 개설하며 상황이 나아지자, 보다 열악한 현실에 놓여있는 어린이 재활병원으로 시선을 돌렸다.

“적자 때문에 보바스기념병원과 인천 꾸러기병원 등이 모두 폐업하거나 사업을 전환하면서 국내에 어린이 장애인 전문 재활병원이 전무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상황이었죠. 오랜 기간 비싼 치료비로 고통받다 부부의 이혼 등으로 가정이 붕괴되는 현상을 막고, 장애 아동에 대한 조기 진단을 통해 3배 이상 사회적 비용을 감소하기 위해서라도 어린이 전문 병원을 짓겠다 마음 먹었습니다.”

푸르메 재활병원 건립에 앞서 지난 2012년에는 신교동에 국내 최초 장애 어린이 재활센터인 ‘세종마을 푸르메센터’를 개관했다. 이곳을 설립하는데는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찾아왔음에도 불굴의 의지로 UC버클리에 입학, 국내와 미국 실리콘밸리 등에서 벤처기업을 창업한 이철재(47) 기부자의 10억원이 큰 도움이 됐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은 현실이 됐다. ‘맨땅에 헤딩’으로 시작했던 장애인 아동 재활병원 설립의 꿈은 지난 4월말 서울 상암동에 국내 최초 장애인 어린이 재활병원인 푸르메 재활병원이 설립되며 이뤄졌다.

지하 3층~지상 7층, 91병상 규모의 이 병원은 총 건립비용 430억원 중 서울시(85억원)와 보건복지부(15억원)의 보조를 제외한 330억원이 순수 기부를 통해 모아지는 기적을 경험했다. 넥슨에서 내놓은 200억원을 비롯해 총 500개 기업, 6000여명의 기부자들이 십시일반한 기부금을 통해 병원이 건립됐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 500명의 환자를 받을 수 있는 이곳 병원에는 현재 일일 300명의 장애 어린이 환자들이 방문해 치료받고 있으며, 다음달 1일부터는 40병상 규모의 입원 병동도 운영합니다.”

하지만 꿈이 실현된 지금 백 이사의 머릿속은 더 복잡하다. 온통 머릿속에는 갓 개원한 푸르메 병원의 안정적인 운영비를 조달할 방법을 찾는데 집중돼 있다. 그는 “기업 기부자들의 경우 본인들의 기부 결과가 남는 병원 설립에 대한 기부는 적극적인 데 비해 운영비 기부엔 인색하다”며 아쉬워했다.

100여명의 의료진을 고용하고, 최고의 치료 설비를 들이다보니 하루에 1000만원, 1년이면 30억~40억원의 적자가 나고 있다는 푸르메 병원.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기부금을 열심히 끌어오고 있다지만 상황이 힘들다는 사실만은 숨길 수가 없다. 서울시가 푸르메 병원을 ‘공공 안전망병원’으로 지정해 매년 최대 9억원(올해 7억3000만원)까지 지원하기로 했지만 역부족이다.

▶민간 설립-정부 지원, 공공의료부문의 새 모델 돼야=“민간 병원을 지원한 전례가 없고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장애 어린이 재활치료에 손 놓고 있는 당국이 사실 밉네요.”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온화한 목소리를 유지하던 백 이사도 이 부분에서 만큼은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장애 어린이 재활치료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진 못할 망정 ‘행정편의주의’에 빠져 되는 일도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푸르메 재활병원을 만들기 전 선진 재활치료 시스템을 보기 위해 독일ㆍ오스트리아ㆍ스위스 등 유럽 내 재활병원 10여곳을 직접 방문했던 백 이사는 독일 뮌헨의 한 재활병원 원장에게 운영 적자를 어떻게 해소하는지 물었을 때 놀라운 대답을 들었다. “그건 정부의 의료복지 담당자가 걱정할 일이지 왜 백(Paik)이 걱정하죠? 당신은 좋은 병원을 짓고 좋은 의료진을 모을 생각을 해야죠.”

설립 후 뻔히 보이는 대규모 적자와 이를 상쇄할 수 없는 낮은 건강보험 수가 때문에 고민하던 백 이사에게는 충격이었다. 그는 “정부가 직접 나서 도와줄 수 없다면 기부와 관련된 각종 규제를 완화해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기부에 나설 수 있도록이라도 해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답답해 했다.

백 이사는 민간이 운영하고 정부가 지원ㆍ감시하는 방식을 새로운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공공 성격의 병원에 정부의 지원이 들어오는 만큼 투명하게 운영하는지 감시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

사실 백 이사의 꿈은 이제부터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모습은 장애인 재활을 넘어 스스로 살 수 있는 직업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서울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지자체에서 합작을 통해 제2ㆍ제3의 푸르메 병원을 만들자는 제의가 많습니다. 멀리 서울까지 장애 어린이 치료를 위해 노력하는 부모님들에게 희소식을 안겨드리고 싶어요.”

그는 “서울 시내 5곳에서 자폐인들이 종업원으로 일하는 카페를 개설해 운영 중”이라며 “앞으로도 장애 어린이를 훌륭하게 재활시키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 프로그램을 강화할 것”이라는 포부를내보였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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